
Intro
인터넷을 서핑하던 중 어떤 판결문에 대한 게시글을 읽고 박주영 판사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음은 울산 자살 방조 미수사건의 판결문 일부이다. 판결문 속에서 피고인의 사연을 안타까워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 이어나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공과금 몇 만원이 없어 단전된 싸늘한 월세 방에서, 몇 달치 치 월세가 밀려서, 누군가에게 배신당해서,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억울한 일을 당해서, 아무도 곁에 없어서… 누군가 생을 끝내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수많은 이가 무수한 이유로 스스로 목 숨을 끊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그저 관성적으로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죽는다. 살인과 강간이 끊이지 않고, 매일 서너 명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익명이라는 베일 뒤에 숨어 저주를 퍼붓고, 서로 무시하고, 외면하고, 홀대하고, 핍박하고, 착취하는 이 세상을 두고 차마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모진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이유는 세상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엉망진창임에도 우리가 미련스럽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무릇 모든 숨탄 것들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살고 싶다. 그 절대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고통이, 이처럼 자주, 이처럼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생활고로, 우울증으로 세상에서 고립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잘 살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법정의 얼굴들'은 부산 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는 박주형 판사가 쓴 에세이이다. 작가가 판사로 근무하며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 그리고 법정에서 만난 여러 얼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사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닌 재판의 주관자이다. 이미 벌어진 사건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연에 사건을 방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과 가해자 또는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현실을 비판한다. 또한, 미비한 제도적 현실 때문에 발생하는 2차 가해 그리고 피고인을 바라보는 미숙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공감과 연대
작가는 공감과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작가가 법정에서 만난, 같은 아픔을 격은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거친 세상을 살아가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랑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기쁨이다. 공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사회를 바꿔가는 기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혐오가 넘치는 세상이다. 세대, 정치, 직장, 성별, 종교 나눌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준으로 서로를 나누고 평가한다. 서로에 대한 갈등이 극에달한 이 시대에서 공감이 치료제 일지도 모르겠다.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현실의 벽을 부실 수 있다
여러 에피소드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지역의 범죄단체로 기소 된 조직의 부두목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말하길 그는 재판 진행 과정 중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기들은 단순 양아치이며 범죄집단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는데, 익살스러운 유머로 재판 내내 작가를 곤혹에 빠뜨렸다고 이야기한다. 구속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기란 쉽지 않다. 비록 그는 실형을 받아 수감되었지만, 출소 이후 범죄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현실의 벽을 부실 수 있다. 삶은 슬픔과 웃음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현실이 지독하게 스스로를 괴롭히더라도, 삶을 낙관하고 웃을 수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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